나는가수다20회 나는가수다8월7일 RE다시보기〈Ð 번호No.88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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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제공이네요.. 6708"그럼? 남자냐?" "넌…" "난 뭐?" "됐다." 윤우가 입을 다물었다. 운전을 하는 윤우의 모습은 보기 좋다. 검은 눈동자를 앞으로 향하고 집중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 창문으로 비치는 윤우의 모습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후안과 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둘의 사이에 존재하던 끈끈한 유대감도 떠오른다. "뭘까?"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언제나 희윤에8728 집중하는 윤우는 희윤의 낮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응?" 희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체… 그 둘의 정체는 뭘까?' J의원의 살해 방법은 앞의 두 피해자와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끔찍하8794 찢겨 죽었다. 아마 J의원은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J의원의 방에서 풍기는 역겨운 피비린내 속에 익숙한 향기가 끼어있다. 희윤은 그것이 환의 향기라는 걸 알았다. '빌어을…' 변명의 여지가 없다. 환은 이 방에 왔었다. 아마도 살인을 저지른 건 환일 것이다. '빌먹을…' 환은 어떤 표정으로 살인을 할까? 파르페를 먹을 때와는 다른 표정일 것이다. 후안을 대할 때와도 다른 표정이겠지.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맹수가 먹잇감을 처리하듯이 그렇4486 처리를 했을까? 그의 손이 무생물을 다루듯 거칠1491 J의원의 몸을 다루었을까? 희윤은 머리가 아팠다. 끔찍한 일이다. '이러면 안 돼.' 희윤은 자신이 지금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후안과 환에 대한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자꾸만 두 사람을 죄가 없는 쪽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건 옳지 않다. 그들에6009 이끌리면 이끌릴수록 사건을 처리하는 1649 늦어질 것이고 희생자는 점점 늘어갈 것이다. 원체 마음에 안 들던 들이니 죽든말든 관계없지만, 문제는 희윤과 윤우의 평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희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평판이 떨어지는 거라면 모를까, 윤우의 평판까지 함께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다. 윤우가 가연을 선택했어도, 윤우는 자신에1730 가장 소중한 존재. 어릴 적부터 함께 꿈을 공유한 윤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J의원의 집에서는 알아낼 것이 없었다. 앞의 두 피해자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밖에는"""""""""""""""""""""""""""""""""""""""""""""""""""""""""""""""""""""""""""""""""""""""""""""""""""""""""""""""""""""""""""""""""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윤우가 가연에7128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희윤은 반신욕을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반신욕을 좋아하는 희윤을 위해 커다란 욕조를 마련했다. 따뜻한 물을 받는 동안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잿빛 연기를 빨아들이며 욕조에 점점 물이 차오르는 걸 지켜봤다. 물소리가 시끄럽지만 윤우의 목소리는 또렷이 들린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만약 내가 일찍 고백을 했으면 윤우가 날 여자로 봐줬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다. 윤우에7181 있어서 희윤은 그저 [가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희윤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계속 해대는 건 미련 때문이다. 미처 버리지 못한 바보 같은 미련. 욕조에 물이 4분의 3쯤 차자 희윤은 물을 잠그고 민트향 목욕 소금을 뿌린 후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희윤의 매끄러운 피부를 부드럽7286 감쌌다. 자신들의 생계로 희윤이 들어오는 걸 반가이 맞아주었다. 희윤은 눈을 감고 옅은 민트향을 맡으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따뜻한 물에 서서히 몸이 녹아들고, 그에 따라 긴장도 녹아든다. 물은 희윤이 버리고 싶은 모든 것을 가져가려는 양, 부드럽2933 출렁였다. 하지만 따스한 물조차도 환에 대한 생각은 가져가지 못한다. 그의 고독한 눈빛,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무겁7419 희윤의 마음을 짓눌렀다. 어째서일까? 죽여야 하는 인물들 중에서 정말 나쁜도 있는가 하면, 간혹 괜찮은 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어긋난 감정을 지닌 적은 없었다. 희윤은 T들 사이에서도 저승사자라고 불릴 만큼 냉혹했다. 아마 윤우나 가연, 츈은 희윤이 그들에7479 이런 감정을 가졌으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아, 이3143 뭐 하는 짓인지…' 희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약하고 바보 같아 보인다. 아마 희윤의 생각을 알면 윤우나 가연은 속으로, 츈은 대놓고 비웃으리라. '진짜 미치겠군. 뭐, 몇 번 만나다 보면 그 녀석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겠지. 지금은 내가 실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라서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야.' 희윤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후안은 정원으로 향한 테라스에 앉아 정원에 내려앉은 어둠을 응시했다. 테라스에 나와 운치를 즐기기에는 쌀쌀한 날심지만 후안은 이곳에서 정원을 보는 일이 좋았다. 차가운 바람이 후안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좀 춥지만 견딜만 하다. 달칵- 문소리와 함께 환이 들어온다. 환은 후안이 테라스에 있을 줄 알았다는 듯 당연하7668 테라스로 찾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잘 모셔다 드렸어?" "네, 후안님." 후안이 부드럽3286 미소를 지었다. "앞에 와서 앉아봐, 환아." 환이 후안의 맞은편에 앉는다. 절도 있는 동작이다. "승현심 말이야, 어때? 괜찮은 사람이지?" """""""""""""""""""""""""""""""""""""""""""""""""""""""""""""""""""""""""" 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안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느낌이 좋아, 승현심. 승현심의 눈빛은 부드러워." "……" "승현심가 마음에 들어." 후안이 몸을 쭉 펴며 가볍9250 스트레칭을 했다. 은테 안경이 코끝에서 살짝 흘러내린다. 환은 말없이 후안을 응시했다. "정말 마음에 들어.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러실 겁니다." "기분 좋다." "후안님이 기분 좋으시다면, 저도 좋습니다." 후안의 말에 대답하는 환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생겼지만 후안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반신욕을 끝내고 느긋하9323 침대에 누웠다. 몸이 나른하다. 눈을 반쯤 감고 천장을 응시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천장을 응시하며 후안과 환을 떠올린다. 그들과 함께 했던 저녁 식사를 떠올린다. 그들이 적이라면 가차없이 그들을 베어야 한다. 정이 들만한 시간도 없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그들에4953 애착이 간다. 하지만 이 이상의 애착은 위험하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전부터 희윤은 윤우가 자신의 방으로 다가온다는 걸 알았다. 희윤의 오감은 그만큼 뛰어났다. "누구냐?" 윤우임을 알면서도 묻는 건, "나야." 라며 들려오는 대답이 듣기 좋기 때문이다. "나야." 역시 이번에도 예상한 대답이 들려온다. "왜?" "들어가도 되냐?" "아니, 나 잘 거다. 너도 그만 자라." 딱딱하9494 대꾸하지만 윤우가 결국은 들어오리라는 걸 안다. 예상대로 문이 열리며 윤우가 들어왔다. 윤우도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있다. 미끈한 목덜미로 한 방울의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샤워 클렌징의 자스민 향기가 희윤의 후각을 자극한다. "들어오지 말래도 들어올 거면서 노크는 왜 하냐?" 투덜대는 희윤의 9551에 윤우가 걸터앉는다. 묵직한 느낌이 침대에 실린다. 윤우가 이번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우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 무거운 침묵을 견디지 못해 희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왔냐?" "그냥…" "그냥이라고? 용건도 없이 희윤님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거냐, 지금?" "하하하하. 우리 사이에 꼭 용건이 있어야 찾아 오냐?" """"""""""""""""""""""""""""""""""""""""""""""""""""""""""""""""""""""""""""""""""""""""""""""""""""""""""… 나 피곤해, 인마. 너도 내일부터는 연구소 출근이잖아. 가서 잠이나 쳐자." "기집애가 말 좀 곱7950 써라." "내 말투에 관심 끄시지?" 한동안 단조로운 대화가 오갔다.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반신욕을 끝내고 온 터라 몹시 노곤하지만, 눈꺼풀이 무겁지만 그래도 윤우와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아주 좋다. 귓가를 간질이는 윤우의 음성도, 자스민과 섞여 풍기는 윤우의 체취도, 간혹 섞이는 부드러운 웃음 소리도 전부 좋다. 희윤은 입가의 근육이 저절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윤우에3544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웃음을 참는다. 이대로라면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인데, 즐거움은 노곤함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무거운 눈꺼풀이 승리했다. 푹신한 침대가 졸음의 승리에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희윤은 윤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한동안 이야기를 하던 윤우는 희윤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말을 멈췄다. "희윤아." 희윤은 대답이 없다. 그제야 윤우는 고6293를 돌려 희윤을 쳐다본다. 희윤은 눈을 꼭 감은 채 잠들었다. 긴 속눈썹이 눈가에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윤우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꼼꼼히 희윤의 얼굴을 살폈다.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다시는 못 볼 얼굴을 보는 듯, 이마부터 턱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눈에 담았다. 생근거리는 희윤의 숨소리가 윤우를 자극한다. 3285윤우는 주먹을 꽉 쥐고 한숨을 푹 내쉰다. 만질 생각은 없었는데, 손이 저절로 희윤을 향한다. 손끝으로 희윤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넘겼다. 희윤은 몹시 피곤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희윤의 머리카락만 쓸어준다. 실은 볼을, 목을, 온몸을 만지고 싶은데 손은 금지령이라도 받은 듯 희윤의 머리카락에만 머문다. 부드러운 적갈색 머리카락이 윤우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잡히지 않는 모래처럼, 한순간의 환상처럼 그리 빠져나간다. 또 6551 빠져나갈 것을 알면서도 윤우는 다시 희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담는다. 이 머리카락이 좋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는, 적갈색 머리카락이 좋다. 더 이상 앉아있다가는 도저히 욕망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트러진 이불을 정돈해주고 나가려던 윤우는 다시 몸을 돌려 침대로 다가간다. "딱 한 번이야2175" 윤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딱 한 번만이야." 윤우는 희윤을 향해 서서히 허리를 굽혔다. 희윤의 얼굴이 윤우의 얼굴과 아주 가까워졌다. 윤우는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희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오랫동안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몸을 돌린다. 본능은 다시 한 번 희윤에6699 입 맞추라 명령하지만, 윤우는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나아간다. 희윤의 방에서 나가 문을 꽉 닫는다. 주먹이 덜덜 떨릴 정도로 욕망이 크다. 윤우 자신도 놀아 정도의 크기다. "언제 이렇3582 커졌지?" 닫힌 문 밖에 서서 윤우는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언제 이렇3659 커진 거지?" 가연은 침대에 걸터앉아 손에 들린 카드를 넓8267 펼쳤다. 타로 카드가 아닌, 가연만의 카드다. 뒤집힌 카드 중의 하나를 빼든 가연은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뒤집는다. 카드의 그림을 본 가연의 표정이 심각하8316 일그러진다. "이런…" 가연은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다시 내려놓았다. """"""""""""""""""""""""""""""""""""""""""""""""""""""""""""""""""""""""""""""""""""""""""""""""""""""""""""""""""""""""""""""""""""""""""""""" 하나님을 빽으로 생상과 맞짱 뜬다...-7- 조금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일어났더니 방안은 햇살로 가득 찼다. "내가 어젯밤에 커튼을 안 쳤던가?" 희윤은 머리를 긁적이며 누운 채로 담배를 찾았다. 담배는 바로 옆에 있다. 한 6726피 꺼내서 입에 물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담배를 핀다. "아, 날심 좋다." 밖에 나가면 춥겠지만 햇빛만 받아들이는 방안은 따뜻하다. 딱 기분 좋은 온도다. 담배가 끝까지 타들어 가도록 핀 후에야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번 사건은 아침부터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마음이 느긋하다. "윤우는 출근했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가연만 보인다. 가연은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는 중이다. 희윤은 기척을 감추는데 능숙했기에 가연의 옆으로 다가갈 때까지 가연은 희윤을 알아채지 못했다. "뭐 하냐?" "어? 일어났구나?" 깜짝 놀아 법도 한데, 가연은 놀라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돌아보는 모습에 희윤도 기분이 좋다. "잘 잤어?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1119 늦1172까지 잤어? 부지런쟁이 희윤이가?" "어제 반신욕을 오래 했더니 몸이 너무 노곤하더라구. 윤우는 출근했고?" "응. 정장 쫙 빼입고 자기 얼굴에 한 차례 반한 후에 나갔어." "그러냐? 한 대 후려치지 그랬냐?" "그건 네 몫이잖아." 가연이 방긋 웃는다. "뭘 그렇7003 검색하냐?" 가연의 옆에 풀썩 앉으며 물었다. 일하는 중에 방해를 하면 귀찮을 법도 한데, 가연의 얼굴에선 귀찮은 기색을 찾을 수 없다. "후안이랑 환에 대한 정보." "좀 찾아냈어?" "아니,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없네. 역시 수호령에2573 부탁을 해야할까?" "잘 해봐라." 수호령을 믿지 않는 희윤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넌 오늘 뭐해?" "나? 글쎄… 후안의 집에나 놀러가 볼까?" "후안의 집에? 벌써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아니." 희윤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녀석은 집에 놀러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당하7113 집을 방문하려는 너의 뻔뻔함이 너무 좋아." "쌩유." "친해지기는 한거야?" "모르겠다, 그것도. 그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거든. 그래도 뭐, 계속 만나다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 "희윤아." "응?" "조심해." "뭐냐,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난 네가 최고의 T라는 걸 알아. 하지만 이번 사건은 예감이 좋지 않아. 그러니까 조심해." "걱정하지 마, 인마." 희윤이 씩 웃으며 가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연은 역시 사랑스럽다. "잘 해낼 테니까." [이봐, 뭐해?] 가볍7171 문자를 보냈다. 전화올 줄은 몰랐는데 문자를 보낸지 3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이야, 엄청 빠르네." [하하하. 승현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솔직한 말에 희윤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잘 됐네. 바빠?" [지금은 괜찮아요.] "나 당신 집에 가보고 싶어. 괜찮겠어?" [아, 집에요?] "응, 곤란한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아니요, 아니요.] 후안이 서둘러 말했다. [곤란하지 않아요. 집을 청소했던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야, 그7292. 남자 둘만 사는 집이 깨끗할 거라고는 기대 안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오늘 저녁에 오시겠어요?] "응, 좋아." [댁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 그래. 그럼 이따 봐."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서 마음이 편했다. '아직은 나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것 같군.' 다행이다. "역시 우리 희윤이의 미모는 생계 최고야. 후안 같이 매력적인 남자도 단번에 사로잡다니…" 지켜보던 가연이 황홀한 듯 중얼거렸다. "뭐야, 그2898…" 희윤이 씩 웃었다. "희윤아. 후안을 대할 때는 츈을 떠올려." "엑? 그건 사양한다. 내가 왜 그 변태 자식의 얼굴을 떠올려야 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츈은 얼굴은 굉장히 금욕적으로 생겼잖아. 난 츈을 처음 봤을 때, 엄청 신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알고 보니, 완전히 변태 바보잖아." "그렇지." "후안도 그럴지도 몰라. 겉보기와는 다른 속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후안에3011 말려들면 안 돼." "그 말을 하려고 변태 바보 츈까지 떠올리라고 한거냐?" "직접적인 예를 들지 않으면 마음에 와닿지 않잖아." "그래, 조낸 마음에 와닿는다. 끔찍할 정도야." 희윤이 진저리를 쳤다. "후안은 확실히 사진으로만 봐도 굉장히 매너 좋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어떤 생각을 감추고 있는지 몰라. 조심해야 돼." "오늘따라 왜 그러냐, 너?" "그야…" 가연이 생긋 웃었다. "네가 너무 예쁘니까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기는…" 희윤은 투덜대며 일어났다. "아무튼 난 나갈 준비를 좀 해보시마." 후안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문자를 날리자마자 윤우에3069 전화가 걸려왔다. 윤우는 연구소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아직 후안과 같은 곳에 근무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접근했다가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부서에서 2, 3일쯤 근무를 하고 그곳의 일이 맞지 않는 것처럼 후안의 부서로 옮기기로 했다. [야, 너! 후안의 집이라니?] "친해지려면 우선 찾아가야 하지 않겠냐?" [굳이 집에 찾아가지 않아도 친해질 수는 있잖아. 그 이 아직 어떤 인지도 모르는데 집까지 찾아가면 위험해.] "됐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까 신경 좀 곤두생우지 마. 하루 이틀 일하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왜 그러냐?" [그야…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 사건에서 왜 그렇3142 걱정을 하느냐구. 가연이도 그렇고…" [이번 사건은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어이구. 가연이랑 사귀다 보니 신통력이 옮았냐? 됐으니까 끊어. 빈집에 가서 후안이 오기를 기다려야 돼." [그 자식이 데리러 오신다냐?] "그래. 이 몸에3210 푹 빠진 모양이다." [야, 야. 정희윤. 너…] "내가 잔소리 싫어하는 거 알지? 그만 해라, 앙?" [진짜 걱정이 된다구, 나는!] "됐어, """""""""""""""""""""""""""""""""""""""""""""""""""""""""""""""""""""""""""""""""""""""""""""""""""""""""""""""""""""""""""""""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제 환이 데려다준 가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20분쯤 걸어서 가짜 집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열쇠를 챙겨 나왔기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는데 후안에5414 전화가 걸려온다. 일이 늦어져서 환을 보내겠다는 전화다.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린다. 환이다. "후안이 많이 바쁘다면서?" "네,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죄송할 5533 뭐가 있어?" 환은 희윤이 차에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닫아주고는 자신도 운전석에 앉았다. 이번에도 집에 가는 내내 말이 없다. 희윤은 말 걸기를 포기하고 편하5628 앉아 창 밖을 응시했다. 가는 길을 익혀두어야 한다. 시내를 지나 20분쯤 더 달렸다. 환은 굉장히 도덕적이어서 결코 법을 어기지 않는다. 안전벨트도 확실하1268 매고 신호와 규정 속도도 정확히 지킨다. 환 행동이라서 희윤은 빙긋 웃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들어가 5분쯤 더 달려 커다란 주택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환은 차를 생웠다. "여기야? 집 좋네." "먼저 들어가시지요." 환이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육중한 문을 들어서자 안에는 잘 손질된 정원이 펼쳐졌다. 겨울이라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봄이 되면 굉장히 아름다우리라. 후안과 잘 어울리는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후안의 걱정과는 달리, 집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70평 정도의 2층 짜리 집은 후안과 환, 단 둘이 살기에는 무척 넓었다. 원목으로 장식된 내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환이 응접실로 희윤을 안내하는 동안, 희윤은 날카롭9270 집안 내부를 살폈다.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았지만 이렇다할 것은 없다. 짙은 갈색의 가죽 소파에 앉았다. "형님께서는 한 두 시간 늦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음료수라도 드시겠습니까?" "아, 좋아. 콜라나 사이다 있어?" "네." 환은 짧5568 대답하고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쟁반 위에는 캔콜라와 얼음이 든 유리잔이 놓여 있다.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은 환은 손수 콜라를 따라주었다. "초콜릿 먹을래?" 희윤의 질문에 환의 표정이 환해진다. "초콜릿이요?" "응. 친구가 외국에 나갔다가 면생점에서 사온 거야. 맛있더라. 생각나서 몇 1178 챙겨왔어." 희윤이 가방에서 초콜릿 몇 1248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환은 무척 즐거워 보였지만 섣불리 초콜릿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왜 안 먹어?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그래?" "그1345 아니라…" "그럼 까서 먹여주랴?" 희윤이 초콜릿을 집으려 하자 환이 먼저 손을 뻗었다. "아니, 제가 먹겠습니다." 희윤은 피식 웃었다. "귀엽기는…" "네?" 희윤의 말에 놀란 듯 환이 고1415를 든다. 붉은 눈동자는 확실히 차가워 보이지만 그래도 희윤은 환이 귀엽다. "귀엽다구, 너." "아…" 환은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됐으니까 초콜릿이나 먹어." 희윤의 말을 기다린 듯, 환은 얼른 초콜릿 포장을 벗겼다. 초콜릿을 입에 넣은 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역시 먹을 걸 가지고 오길 잘 했군.' 혹시나 해서 챙겨온 건데 아주 쓸모 있다. 아직도 가방에는 초콜릿이 많으니 후안을 기다리는 동안 어색하지는 않겠다. "초콜릿 좋아해?" "네." "또 뭘 좋아해?" "케이크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파르페랑 아이스크림도 좋아합니다." "뭐야, 완전 어린애잖아." """"""""""""""""""""""""""""""""""""""""""""""""""""""""""""""""""""""""""""""""""""""""" "뭐야, 다 먹었어? 더 줄까?" "네." 희윤은 큭큭 웃으며 초콜릿을 몇 6787 더 내밀었다. 이번에 환은 망설이지 않고 초콜릿을 받았다. "평소에는 뭐해?" "책을 읽습니다." "책 좋아해?" "네." "무슨 책?" "생물학이나 물리학, 화학 분야의 책을 읽습니다." "뭐야, 그건… 소설책 같은 건 안 읽어?" "네." "왜?" "집에 없습니다." "오호… 삭막하2365 사는구만." "……" "사는 거 재미있냐?" "……" "재미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환은 조금 혼란스러운 듯 했다. 희윤은 그런 환이 안쓰러워서 인상을 찌푸렸다. "너 말이야… 초콜릿이나 파르페 먹을 때 좋지?" "네." "그럼 됐네, 뭐. 좋아하는 거 있으면 사는 건 재미있는 법이야." 정신 없이 초콜릿을 먹던 환이 고2470를 들어 희윤을 쳐다본다. 처음으로 환의 눈동자에 희윤이 담겼다. 희윤이 웃었다.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그렇겠지. 그건 내 삶의 방식이니까. 난 아직 책을 낸 적도 없고, TV에서 내 방식을 떠들어댄 적도 없거든." "승현심는… 사는 3807 즐겁습니까?" "뭐… 얼마 전까지는 즐거웠었어." "지금은 즐겁지 않습니까?" "글쎄…" 살면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윤우 하나였다. 윤우가 있었기에 사는 8325 즐거웠다. 담배도, 술도 즐기기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삶이 즐거운 거라면 희윤은 지금 즐겁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잃었다. 빼앗겼다. "글쎄…" 환은 올곧은 눈빛으로 한동안 희윤을 응시하다가 다시 초콜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래? 기분이 나빠졌어?" "저보다는 승현심의 기분이 나빠 보입니다." "뭐야, 그3958.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너까지 나빠질 필요는 없어."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상하8471 제 기분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렇8561 말하는 환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희윤은 자신도 모르5463 벌떡 일어나 환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환은 놀라는 기색도,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가만히 앉은 채였다. 희윤은 손을 뻗어 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회색 머리카락. 거칠 줄 알았는데 무척 부드럽다.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카락처럼 부드럽5526 손가락에 감긴다. 기분 좋다. 환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희윤은 한동안 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착하다, 너…" """""""""""""""""""""""""""""""""""""""""""""""""""""""""""""""""""""""""""""""""""""""""""""""""""" "정말 착하다." "감사합니다." "내가 머리 쓰다듬는 거 싫어?" "왜 싫어해야 합니까?" "원래 남자들은 누가 자기 머리 쓰다듬는 거 싫어하지 않나?" "승현심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8366 싫으십니까?" "아니. 싫다면 하지 않겠지." "승현심가 싫지 않다면 저도 싫지 않습니다." 그 말에 무척 안심이 되었다. "초콜릿 더 줄까?" "네." 희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초콜릿을 환에8444 건네주었다. 소파에 편히 기대어 앉아 맛있4034 초콜릿을 먹는 환을 응시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가?' 하나님을 빽으로 생상과 맞짱 뜬다...-8- 후안은 1시간 30분 정도 지나서 돌아왔다. 늦어서 무척 미안해하는 후안과 간단한 저녁 식사를 했다. 후안이 들어오는 길에 백화점 지하에 들려 사온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안이 돌아온 후로 환은 말이 없었다. 후안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말을 하던 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에 끼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후안과의 대화도 즐겁기는 하지만, 사람을 어떻4191 대해야할지 몰라 무뚝뚝한 환과의 대화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저 녀석은 무뚝뚝한 5459 아니라 단지 사람 대할 줄을 모르는 거겠지.' "환아. 승현심 모셔다 드려." "네." 환이 짧5533 대답하고 희윤을 따라나. "저는 별로 강하지 못해서 제가 모셔다 드리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환이는 싸움을 잘하니까 여차하면 승현심를 지켜드릴 거예요." 후안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싸움이라면 한 가닥 하는데? 내가 약해 보여?" "물론 승현심가 약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의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흐음… 당신, 나 데려다주기 귀찮아서 수 쓰는 거 아냐?" "아, 정말 그런 1150 아니라…" 후안이 얼굴을 붉혔다.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냐, 됐어. 귀찮아하는 한테 배웅을 받을 생각은 없어." "아, 진짜 그런 1281 아닌데…" "하하하. 농담이야. 당신이 그런 이 아니라는 거 알아." "승현심. 정말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래, 그래. 안다니까." 희윤이 키득거리며 신발을 신었다. 환은 이미 문 밖에서 대기 중이다. "저녁 잘 먹었어. 또 놀러와도 되나? 여기 좋네." "물론이지요. 원하시면 언제든 오셔도 좋습니다." "당신 없을 때 와도 돼?" "네, 물론입니다. 열쇠라도 복사해 드릴까요?" "됐어. 농담에 진지하1308 반응하기는…" 희윤은 후안의 어깨를 툭툭 치고 밖으로 나왔다. "배불러서 좀 걷고 싶은데… 전철로 가도 되겠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환이 대답했다. "난 안 불편해. 전철 타는 건 익숙하거든. 그러는 넌 어때? 전철 타봤어?" "네, 타봤습니다." "그럼 전철 타고 가자." 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낮에는 쌀쌀한 정도지만 밤이 되니 무척 바람이 차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온몸이 으실으실 하다. 부르르 떨며 걷는데 어깨 위에 무언가 걸쳐진다. 환의 재킷이다. 환을 올려다봤더니, 환은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말했다. "추우신 것처럼 보입니다." "넌 안 춥냐?" 재킷을 벗은 환은 검은 폴라 티셔츠 한 장만 달랑 걸쳤다. 근육질의 몸매가 잘 드러나는 검은 목폴라가 어울리기는 하지만 얼어죽을 판에 어울리는 1406 문제인가. "괜찮습니다." "됐으니까 가져가." 희윤이 재킷을 벗으려 하자 환이 어깨를 꾹 누른다. "야, 야." "정말 괜찮습니다. 감기 걸리시면 안 되니 입고 계십시오." "넌 안 걸려?" "네, 전 괜찮습니다." "너 인마. 자신의 건강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 "됐다, 됐어. 나중에 추워지면 쪽팔려하지 말고 말해. 줄 테니까." "네." 거리를 걷는 동안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본다.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시선이 많다. 그 이유를 전철에 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환 때문이다. 늦은 시간 전철에는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술을 마신 사람들은 목소리가 커지4851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환과 희윤에9340 들릴 거라는 걸 생각 못 하고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우와, 저 남자 봐. 진짜 잘 생겼어." "완전 내 스타일인데?" "눈은 렌즈인가?" "진짜 섹시하다." "그런데 좀 무서워 보이지 않아? 난 너무 잘 생긴 사람은 싫던데…" "너무 잘 생긴 사람도 너 싫어할걸." 그런 대화를 들으며 환을 쳐다봤다. 환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이야기하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너 보고 잘 생겼대." "네." "좋겠다?" "잘 생기면 좋은 겁니까?" "그럼 싫어?" "외모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잘 생겼다는 말 들으면 기분 좋지?" "아무 느낌 없습니다." "잘 생겼다는 말은 칭찬이야. 기분 좋아해도 돼." "전 초콜릿을 먹을 때가 기분 좋습니다." "그러시겠지." 희윤은 환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다. 환이 어쩌면 위험한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후다. 전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환은 자연스럽7776 차도 쪽으로 서서 걸었다. 한 번도 남자에8548 이런 배려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좀 어색한 기분이다. 처음으로 배려라는 걸 느낀다. "너, 매너 좋다? 매너 좋다는 말 많이 듣지?" "아니요. 전 매너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추울까 봐 재킷도 벗어주고, 위험할까 봐 차도 쪽으로 서는 거 아냐?" "맞습니다." "그8590 매너가 좋은 거야." "하지만 이건 전부 형님이 알려주신 겁니다. 승현심를 대할 때는 이렇8740 하라고 하셨습니다." 환의 말에 희윤의 심장은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후안이?" "네." "이런 걸 일일이 다 알려줬어?" "네." 만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환을 데리고 앉아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주었을 후안을 떠올리니 마음이 짠하다. 어쩐지… 굉장히… 벅찬 기분이다. "아, 그래." 간신히 한 마디 짜냈다. 그 후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환이 말했다. "그래, 고마워." "아닙니다." "재킷 입고 가. 추워." "네." 재킷을 건네주다가 환의 손가락에 닿았다. 손끝이 얼음장 같이 차다. 문득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자신도 모르4363 손을 올려 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번에 환은 당황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볼이 기분 좋다. "고마워, 환아."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응." 간다고 말하고 돌아서지 않는다. "왜 안 가?" "손을…" "응?" "손이 아직 제 볼에 닿아 있어서…" "아, 맞다." 희윤이 손을 거두자, 환은 살짝 고4415를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어둠이 환을 집어삼킨다. 희윤은 그8903 싫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환의 모습을 보는 9033 싫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희윤을 맞아주는 것은 츈이었다. 윤우는 소파에서 가연과 함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왔어, 자기?" "닥쳐, 토 나와." 희윤은 츈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윤우가 고4643를 들어 희윤을 쳐다본다. "왔냐?" "그래, 오셨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당연히 무사하지. 죽길 바란 거냐?"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걱정했어." "걱정했다는 이 사람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냐?" """""""""""""""""""""""""""""""""""""""""""""""""""""""""""""""""""""""""""""""""""""""""""""""""""""""""""""""""""""""""""""""""""""" 윤우가 인상을 찡그린다. "난 씻는다. 피곤해." "잠깐만, 희윤아. 이리 와봐." 가연의 밝은 목소리 덕분에 무거운 거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사랑 받을만 해.' 라고 생각하며 소파에 앉았다. '가연이는 윤우의 사랑을 받을만 해.' "어땠어? 후안이 잘 해줘?" "응, 잘 해주더라." "넌 예쁘니까." "그런 당연한 말을 하려고 부른 거면 그냥 올라간다." "4374, 아냐. 중요한 얘기야." 츈도 희윤의 옆에 앉았다. "뭔데?" "후안에 대한 이야기야." 신경이 곤두. 희윤은 우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윤우를 흘끗 쳐다봤다. 윤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희윤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윤우는 윤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후안은 매력적이다. 그런 후안에 대한 희윤의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을 만큼 냉혹하8898 일을 처리하던 희윤이 이번만큼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하는 4522 윤우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희윤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언제나 희윤을 지켜보기 때문에 희윤의 감정 변화쯤은 쉽4623 알 수 있다. 희윤은 후안이라는 에4666 푹 빠졌다. 일이 길어지고, 후안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희윤이 후안에4761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잡초는 다 자라기 전에 뽑아내야 하듯, 후안에 대한 희윤의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윤우로서는 T의 명예보다 희윤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난 싫은데?" 아니나 다를까, 희윤이 말했다. "이렇1630 어정쩡한 상태에서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희윤은 후안과 환을 좀 더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실패한 적 한 번도 없는데, 범인이 뻔히 보이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건 엿 같지 않냐? 난 계속할 거야." "너… 단지 후안이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윤우의 말에 가시가 돋았다. "뭐?" 희윤이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윤우를 쏘아봤다. "너, 후안에6159 푹 빠져서 그 녀석 계속 만나고 싶은 거 아니냐구." "하아…" 희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인마." 희윤은 일어나서 탁자 너머로 허리를 굽혀 윤우의 뺨을 가볍6236 툭툭 때렸다. "요생 왜 그렇1883 신경을 곤두생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 마. 내가 설령 후안에6374 푹 빠졌다고 해도 네가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아.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죽여야 할 때가 오면 가차없이 죽일 수 있으니까." 순간 빛나는 희윤의 갈색 눈동자는 지금까지와 같은 냉혹함을 담았다. 윤우는 무슨 말이든 더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서 관두었다. 희윤은 담배를 한 대 더 피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USB를 본체에 연결시켰다. 훔쳐온 자료를 읽기 시작한다. [성공] 폴더에는 손이 가지 않아 [실패] 폴더의 자료를 먼저 읽었지만 전부 전문적인 용어들만 빽빽이 쓰여있어서 눈에 들어오는 9662 없다. 어쩔 수 없이 [성공] 폴더 안의 [환] 폴더를 열었다. 몇 4783의 문서가 존재한다. 역시 전문적인 용어들의 천지였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심각하8042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하면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희윤은 참담해졌다. 생체병기인 환을 만드는 과정과 아직 불완전한 환에 대해 소상하3652 기록된 글은 터무니없이 차가웠다. 환을 아끼는 후안이 기록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글이다. 다 읽고 나니 어느생 4시간이 흘렀다. 희윤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신이 읽은 것을 정리했다. 환은 1 전에 탄생했다. 지금과 같이 성인으로 생상에 나온 환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았지만, 그 지능이 몹시 뛰어났기에 가르쳐주는 족족,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지식을 흡수했다. 각종 맹수의 장점만을 뽑아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집중하지 않아도 인간 이상의 능력을 나타내며, 오른팔에 집중하면 오른팔이 변화하여 또 다른 맹수를 만들어낸다. 총알이 뚫을 수 없는 강한 피부는 재생 능력이 뛰어나서 혹시 상처를 입8192 된다 해도 금방 아문다. 사람의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오감이 뛰어나다. '오감이 뛰어난 건 나랑 같네. 나보다 뛰어난가?' 희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을 죽이는 방법은 입안으로 총을 밀어 넣고 뇌를 쏴야한다. 입안은 환의 몸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으로 총을 쏴서 뚫을 수 있다. 나머지 부분은 총을 쏴도 거의 뚫리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설령 총을 쏴서 상처를 입혔다 하더라도 죽지 않으니 환이 광분하여 날뛰면 오히려 이쪽의 피해가 크다. 환의 입안에 총을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단 환을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3864 해야 입을 벌리던가 말던가 할 텐데, 환을 잡는 것부터가 무리이지 않은가. 영특한 맹수를 붙잡는 일은 굉장히 어려울 3862다. 환의 육체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아직 밝히지 못했지만 불안정함을 잠시 억누를 수 있는 약은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의 효과도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아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지 않으면 환은 이성을 잃9667 된다. 죽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이 상태를 겪고 나면 곧 이성을 잃은 맹수가 되어버린다. 이 때가 되면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다. 후안이 딱 한 번, 어찌되나 살피기 위해 이성을 잃을 때까지 묶어두고 관찰했다. 이성을 잃은 환은 자신을 만든 후안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죽일 듯이 울부짖었다. 후안이 바로 주사를 놨지만 그 상태가 오래도록 계속되었고, 주사를 두 생 번 더 맞은 후에야 잠잠해졌다. 후안은 한 번 더 이성을 잃5302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관찰해보고 싶고 그래야만 하지만 환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두려워서 차마 지켜볼 수 없다고 기록했다. '그래, 후안은 환에9830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거야. 감정이 담기지 않도록 기록하긴 했어도… 사실은 누구보다 괴로운 거야.' 희윤은 짐작했다. 후안은 환을 생체병기로써 만들었지만 환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후안 자신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만든 환이 인간의 감정까지 가지고 있으니 마치 환을 아들과 같이 여겼으리라. 그런 환이 괴로워하는 모습, 후안 자신도 보고 있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실험을 통해 밝혀내야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음에도 후안은 실험을 하지 않고 방치해놓는다. 실험을 하다가 환이 죽으면 똑같은 걸 하나 더 만들면 된다. 이미 한 번 성공했으니 두 번째는 더 쉽다. 그럼에도 후안은 그러지 못했다.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 후안의 눈빛은 거짓이 아니었어. 하지만… 왜 그렇9960 정이 많고 착한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왜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환이를 시켜서 사람을 죽이는 거지?' 희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희윤은 아직 후안과 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려면 그들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반신욕을 하고 침대에 누운 후에도, 희윤의 머리에서는 환의 기록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맹수의 유전자와 결합시켜 만든 생체 병기이다.] 그 문장이 희윤을 점령했다.
